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韩国佛教宗团协议会次席副会长、真觉宗统理院长悔省法师
  • 2018-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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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연자비(無緣慈悲)와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실천하자!
韩国佛教宗团协议会 次席副会长
大韩佛教真觉宗 统理院长
悔 省


중생이 사는 이 세상을 불교에서 사바세계(娑婆世界)라고 하듯이, 이 중생세간은 참지 않고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흡사 인욕(忍辱)의 수련장과도 같습니다. 일례로 아파트의 층간 소음을 참지 못하고 이웃을 찾아가 해코지를 하는 경우는 예사입니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 외벽공사 인부가 휴대폰 음악을 조금 크게 틀어놓고 일을 하다가 고층에 사는 아파트 입주민과 실랑이가 벌어진 일이 있었습니다. 결국에는 입주민이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작업 인부의 등에 연결된 밧줄을 커터칼로 끊어버려 추락사하고 말았습니다. 이 얼마나 각박하고 위태로운 세상입니까?
그뿐 아닙니다. 사회적 강자의 소위 ‘갑질’로 인해 고통받는 ‘감정노동자’들의 삶은 또 어떻습니까? 심지어 아파트 주거민들의 노골적인 무시나 열악한 처우로 인해 강남의 고급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해 사망한 일도 있었습니다. 당시 동료 경비원들은 그가 분신한 이유로 한 사모님을 지목하며 “평소에 폭언을 하면서 5층에서 떡을 던지거나 먹던 과자를 먹으라고 하는 등 경비원들에게 모멸감을 주었다.”고 전한 바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외로운 그늘 속에서 쓸쓸히 ‘감정노동’에 종사하며 하루하루를 근근이 살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합니다. 정말이지 온통 참아야 할 일이 천지인 세상입니다.
경전에 따르면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난다는 것은 풍랑에 떠내려가던 눈먼 거북이가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구멍 뚫린 판자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토록 귀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누구나 울면서 태어납니다. 주위 사람들은 온통 환희와 축복의 마음으로 기뻐해 주는데도 불구하고, 정작 태어나는 본인은 얼굴을 찌푸리고 좀처럼 울음을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중생은 모두가 미혹과 무명의 업연을 떠안고 세상에 왔지만, 생(生)의 마지막 순간만큼은 훌훌 털고 갈 줄 알아야 합니다. 다른 이들은 슬픔에 잠겨 목놓아 울더라도, 정작 떠나는 자신은 환희와 기쁨으로 충만하게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현실의 원인에 대한 올바른 성찰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서 ‘올바른 성찰’이라고 하는 것은 오늘의 현실은 우리 스스로가 지은 업보라는 자각이어야 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팔심은 데 팥 난다.”는 말도 있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증일아함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의 행위는 좋은 땅에 잘 뿌린 종자와도 같은 것이다. 비가 내려 날 때가 되면 성장하여 과실을 맺는다. 이처럼 사람들이 탐욕과 악(惡)과 이익으로 하는 행위도 반드시 성숙하여 현세나 내세에서 그 과실을 먹어야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강력 범죄에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 가운데 하나가 환경오염입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해 100년 동안 진행된 자연파괴는 수만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기후도 바꿔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에 홍수와 가뭄이 자주 일어나 수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연을 보호하면 자연도 사람을 보호하지만, 사람이 자연을 파괴하면 자연도 사람을 파괴합니다. 인간이 만들어 낸 프레온이라는 가스 때문에 오존층이 파괴되자 사람들이 피부암에 걸릴 확률이 그만큼 높아진 것이 좋은 예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전혀 다른 별개의 존재인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과 자연은 실은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인드라망의 그물이며 세상의 모든 존재는 인드라망의 그물에 달린 구슬들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동물들이나 식물들 나아가 우주의 모든 존재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식물이나 동물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생태와 사육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행되는 가축의 대량살상으로 인해 인류는 많은 전염병을 겪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은 지구상의 어떤 생물 종보다 다양한 동물과 만납니다. 그러나 우호적으로 접촉하는 것이 아니라 마구잡이로 잡아먹고 학대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간들은 지금도 세상 곳곳에서 동물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동물 학대가 멈추지 않는 한 광우병이나 조류독감, 사스와 같은 가축들의 처절한 복수는 계속될 것입니다.
《숫타니파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세계는 업력에 따라 존재하고 사람도 또한 업에 따라 존재한다. 수레바퀴가 쐐기에 얽혀져 굴러가듯 생존하는 모든 것은 업에 속박당하고 있다.”
업력이란 ‘행위의 힘’입니다. 한 나라는 그 나라 국민의 업력에 의해서 존재합니다. 사회환경, 자연환경도 역시 우리들 행위의 작용에 의해 존재합니다.
바야흐로 현대의 세계는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 전환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에 더하여 생명 공학과 우주 공학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과학 기술의 혜택으로 그 어느 시대보다도 물질적 풍요와 편리를 즐기고 있지만, 동시에 윤리적 혼란과 함께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현대의 산업 사회는 모든 문제를 수량화, 물질화, 경제화, 조직화하여 해결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계적이고 경쟁적인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은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를 인간성 상실의 시대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사랑과 배려, 자비와 희생은 우리의 삶에서 참으로 중요한 화두입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고달픈 영혼을 위한 휴식처는 ‘서로를 이해하는 관계의 품’ 뿐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그러한 관계의 완성으로서의 가족과 직장을 꿈꾸며 한평생을 살아가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관계의 확장 속에서 타인과의 인연의 소중함도 느끼게 됩니다. 중생계의 평등함을 관찰하시어 인연 없는 이에게도 자비를 베푸셨던 부처님의 사상과 실천을 이어받아, 나와 남이 둘이 아닌 하나임을 깨닫고 무연자비(無緣慈悲)와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실천해야 합니다.
무연자비와 동체대비심은 먼저 자기를 부정해야만 가능합니다. 부처님 앞에서 나를 내세우는 것은 참으로 철부지와 같은 아만입니다. 나를 철저히 부정함으로써 비로소 거기에서 부처와 중생이 오직 하나인 것을 깨닫게 되고 부처님과 똑같은 동체대비의 자비가 나타나며, 이 자비보살의 행은 그대로 보시바라밀다가 됩니다. 아상(我相)을 버리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지혜로써 상대를 바라봅시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이 세상은 만다라국토가 되어 장엄하게 빛날 것입니다. 소중한 후손의 행복과 세계평화를 위해 다 함께 진리의 등불을 밝히는 불법(佛法)의 대도(大道)에 동참합시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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